수필

"사과 선물"


미국서 가지고 온 검은색 가죽점퍼가 앞으로 닥칠 추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라는 생각을 이틀째 하고있다. 오늘 지하철은 아디다스 신발에 이불처럼 두터운 검정 롱코트를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하필 내 점퍼 색깔도 검은색. 기분 별로다.^^


유행따라 획일적 따라옷입기. 싫다. 나만의 나다운 옷을 입고 싶다. 90년대초 종합상사에서 은행으로 전직해서 은행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직원들이 흰 와이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부대낀 적이 있다. 사람들이 기계나 소모품처럼 보였다. 얼마 지나지않아 나는 짙은 파란색 또는 굵은 줄이 들어간 와이셔츠를 입기 시작했다. 조금의 눈총과 보이지 않는 부러움 당연히 있었다. 개의치 않았다. 지금은 지저분하고 폼도 안나는 줄 알면서 얼굴에 수염을 달고있다.


이틀 전 백화점 세일코너에서 건진 '종가집 추어탕'을 먹어보겠다는 기대감을 갖고 아파트를 들어서는 순간 택배가 왔다는 쪽지가 눈에 띄었다. 청송사과 한 박스. 평일에는 교사 주말에는 농부인 친구의 한 해동안 땀흘려 거둔 열매였다. 동기회 총무를 통해 내 주소를 챙긴 모양이다. 사과 농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대충 안다. 선친께서 퇴직 후 몇 년간 시골에서 사과 농사를 지으셨던 것을 곁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당시에 제대로 된 사과를 먹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새들이 부리로 쪼아버렸거나 벌레 먹은 것들 아니면 나무에서 떨어진 것들만 먹었다. 쏟은 땀과 정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박스를 열어보니 최상품이었다.


고등학교 때 그는 절친은 아니었다. 나보다 덩치가 월등히(ㅎㅎ) 작았지만 함부로 하지는 못했다. 한 성질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별난 이름을 가진 나는 그 친구 명찰을 보면서 큰 위로를 받았다. 오랜 세월 놀림감이 되었을 것을 짐작하면서 강한 동지의식을 느꼈다.


"박 무식"


비교적 최근에 알았다. 국보법 때문에 도무지 말도 안되는 일로 기소되어 오랫동안 시달려 왔다는 것을. 최순실-박근혜 시절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기가 찼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아마 한 번도 제대로 그를 만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끔 페이스북에 포스팅하는 그의 짧고 평범한 글 행간을 통해 그를 만났다. 좀 커 보였다. 지금 나는 그저 그 일의 전후 과정이 쪼매한 박선생을 더 키웠을지 모르겠다고 짐작을 해 볼 뿐이다. 안동 가면 꼭 만나 볼 생각이다.


이 시대의 종교 "좀 더 많이 쌓자"라는 흐름에 거슬러 올라가는 그의 발자국이 사과박스 상단에 선명히 찍혀있는 것을 목도했다. 특상품 사과를 거저 주어서 고맙고 감동되어 이런 말 하는 것 아니다. 오늘 받은 사과 박스는 내가 그동안 컴퓨터 화면을 통해 읽어온 "무식텍스트"가 팩트임을 확인시켜주는 종이 프린트물인 셈이었다.


덩치는 나보다 쪼매한 놈이 더 크게 놀고 있다. 기쁘다. 사과 박스를 통해서 읽는다. 관념에 그치지 않고 그 생각과 사상을 직접 살아내고 있는 친구를. 검정 코트처럼 판치는 세상 흐름에 저항하며 자기 옷을 걸친채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을. 거인의 삶이다.


무식하게 살아서는 안되지만 무식처럼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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