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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주기



2017년 고등학교 동기 송년회를 마치고 난 후 같은 반별 친구들이 2차로 모임을 가졌다. 꽤 추운 날씨와 늦은 시간임에도 1차에 참석했던 애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모였다. 내년에 새롭게 섬길 회장과 총무를 뽑은 후 각자 만들어 낸 건배사를 농담을 섞어 주고 받으며 흥겨운 시간을 보냈다. 자정이 가까워 오자 몇몇 친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고, 다음 날 교회 설교 때문에 마음이 쫓겼던 나도 서둘러 그 대열에 합류하려고 일어나던 중이었다.


그때 송의달이가 작별 인사를 하는 나를 붙들었다. 잠시 이야기를 더 나누자고. 그러지 않아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그냥 훌쩍 작별하기에는 아쉬움이 컸던 나는 설교 부담을 물리치고 별 주저함 없이 자리에 앉았다. 


친구들은 그래도 일 년에 최소한 몇 번씩은 등산, 운동, 정기모임 등으로 서로 만나오던 사이였기 때문에 서로간의 형편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 관한 소식은 아마 부분적으로 몇 조각 알고 있었을 것임이 분명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고 목사가 되었고 지금 미국에 살고 있다는 정도. 그리고 몇몇 친구들은 내 자식들 중 하나가 많이 아프다는 정도.     


'내가 목사가 되리라고는 나도 꿈조차 꾸지 않았는데 너들도 마찬가지지?' 

얘기를 꺼내는 순간 30여개가 넘는 눈동자들이 나한테 따갑게 집중되었다. 오늘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간략하게 얘기하는 동안 친구들의 눈동자로부터 무언가 모를 강한 따뜻함이 느껴졌다. 말 하는 중에 가슴이 조금 벅차 오르기까지 했다. 나의 삶을 이해해주고 나의 결정의 순간들을 동의하고 격려를 던져주는 눈빛들 때문이었다. 둘째 아이 이야기 때는 몇몇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음을 느꼈다.


내 삶을 경청하여 주는 아니, 경청할 줄 아는 친구들! 

고맙고 뿌듯했다. 사실 경청은 성숙한 사람에게서만 보이는 덕목이다.  

나를 이해해주려 하고 들어주려 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크나큰 선물이다. 사실 무릎팍에도 닿지 않는 얕은 대화로만 점철되는 만남의 반복으로는 참다운 우정이 만들어지기 힘든 법. 나는 멀리 떨어져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만나고 있는 친구들이 가끔씩은 서로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경청해주고 고개를 끄덕여주며 손을 잡아주는 깊어진 관계 속에서 우정이 익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이미 그러리라고 믿는다.


모름지기 기독교에서 기도는 입벌려 무엇을 구하는 일보다 경청하는 일이 우선시 되어야한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달라, 해달라 고래고함 지르면서 기도를 끝내버리면 예수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자아만 시퍼렇게 살아 강화될 뿐이다. 이런 사람은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자기 욕망의 탑이 높이 오르고 완고하게 굳어져 버리기 십상이다. 더러운 욕망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게된다. 예수와의 일치된 삶을 꿈꾸며 걸어가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마땅한 바라면, 그리스도인들의 경청의 삶은 선택이 될 수 없다. 이웃과 하나님이란 타자를 먼저 들을 줄 알아야한다. 또 듣고 침묵해야 마땅하다. 그 후에 말해도 늦지않고 모자람이 없다. 동기들 중에 교회에 출석하는 친구들이 있는 것 같아 사족을 붙였다.^^


3학년 3반 반창회 눈동자들이 많이 그리운 밤이다. 

모두들 깊어지는 2018년이 되기를 빈다.


(의달아 고맙다! / 샌프란시스코에서 정현 테니스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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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선물"


미국서 가지고 온 검은색 가죽점퍼가 앞으로 닥칠 추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라는 생각을 이틀째 하고있다. 오늘 지하철은 아디다스 신발에 이불처럼 두터운 검정 롱코트를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하필 내 점퍼 색깔도 검은색. 기분 별로다.^^


유행따라 획일적 따라옷입기. 싫다. 나만의 나다운 옷을 입고 싶다. 90년대초 종합상사에서 은행으로 전직해서 은행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직원들이 흰 와이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부대낀 적이 있다. 사람들이 기계나 소모품처럼 보였다. 얼마 지나지않아 나는 짙은 파란색 또는 굵은 줄이 들어간 와이셔츠를 입기 시작했다. 조금의 눈총과 보이지 않는 부러움 당연히 있었다. 개의치 않았다. 지금은 지저분하고 폼도 안나는 줄 알면서 얼굴에 수염을 달고있다.


이틀 전 백화점 세일코너에서 건진 '종가집 추어탕'을 먹어보겠다는 기대감을 갖고 아파트를 들어서는 순간 택배가 왔다는 쪽지가 눈에 띄었다. 청송사과 한 박스. 평일에는 교사 주말에는 농부인 친구의 한 해동안 땀흘려 거둔 열매였다. 동기회 총무를 통해 내 주소를 챙긴 모양이다. 사과 농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대충 안다. 선친께서 퇴직 후 몇 년간 시골에서 사과 농사를 지으셨던 것을 곁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당시에 제대로 된 사과를 먹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새들이 부리로 쪼아버렸거나 벌레 먹은 것들 아니면 나무에서 떨어진 것들만 먹었다. 쏟은 땀과 정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박스를 열어보니 최상품이었다.


고등학교 때 그는 절친은 아니었다. 나보다 덩치가 월등히(ㅎㅎ) 작았지만 함부로 하지는 못했다. 한 성질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별난 이름을 가진 나는 그 친구 명찰을 보면서 큰 위로를 받았다. 오랜 세월 놀림감이 되었을 것을 짐작하면서 강한 동지의식을 느꼈다.


"박 무식"


비교적 최근에 알았다. 국보법 때문에 도무지 말도 안되는 일로 기소되어 오랫동안 시달려 왔다는 것을. 최순실-박근혜 시절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기가 찼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아마 한 번도 제대로 그를 만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끔 페이스북에 포스팅하는 그의 짧고 평범한 글 행간을 통해 그를 만났다. 좀 커 보였다. 지금 나는 그저 그 일의 전후 과정이 쪼매한 박선생을 더 키웠을지 모르겠다고 짐작을 해 볼 뿐이다. 안동 가면 꼭 만나 볼 생각이다.


이 시대의 종교 "좀 더 많이 쌓자"라는 흐름에 거슬러 올라가는 그의 발자국이 사과박스 상단에 선명히 찍혀있는 것을 목도했다. 특상품 사과를 거저 주어서 고맙고 감동되어 이런 말 하는 것 아니다. 오늘 받은 사과 박스는 내가 그동안 컴퓨터 화면을 통해 읽어온 "무식텍스트"가 팩트임을 확인시켜주는 종이 프린트물인 셈이었다.


덩치는 나보다 쪼매한 놈이 더 크게 놀고 있다. 기쁘다. 사과 박스를 통해서 읽는다. 관념에 그치지 않고 그 생각과 사상을 직접 살아내고 있는 친구를. 검정 코트처럼 판치는 세상 흐름에 저항하며 자기 옷을 걸친채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을. 거인의 삶이다.


무식하게 살아서는 안되지만 무식처럼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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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서 북쪽 해안을 따라 차로 한 시간 정도 가면 포인트레이즈(Point Reyes)라는 곳에 당도할 수 있습니다. 넓고 푸른 초지를 한참 동안 지나 차에서 내려 바닷가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면 육지끝 바위에 예쁘장하게 서 있는 등대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망망대해를 바라다보는 아담한 등대의 자태를 눈에 담노라면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 십상입니다. 나아가 그곳 오른편에 펼쳐진 끝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길게 뻗은 원시 해안을 보게 되면 그 광활함에 절로 입이 벌어지곤 합니다. 


     하지만 그곳에 갈 때마다 저의 시선을 가장 크게 사로잡는 광경은 등대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나무들의 자태입니다. 제법 큰 나무들이 더 이상 위로 자라지는 못하고 하나같이 왼쪽으로 치우쳐 눕다시피 하여 마치 나무동굴을 연상시키는 광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쉴 새 없이 불어대는 강한 북태평양 해풍의 위력에 나무들이 결국 옆으로 쓰러지다시피 몸을 기울여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요. 욕심을 부려 더 키를 높여 똑바로 서있고자 했다면 부는 바람에 견디지 못하고 뿌리째 뽑혔을 겁니다. 만일 이 나무들이 바람 잔잔한 곳에 삶의 터를 잡았다면 그 누구보다 곧은 몸으로 자신의 예쁜 몸매를 자랑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그런데 몸이 비틀어지고 등이 활처럼 휘어져 제대로 자라지 못한 나무들은 그 어떤 나무들보다 더 아름답고 그들만의 고유한 자태로 저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마치 예술가의 치밀한 손길이 닿은 작품처럼 말입니다. 


     몸을 제대로 가누는 것조차 어렵게 만드는 강한 바람, 그것도 하루가 멀다하고 자주 불어대는 바람을 그 어느 나무인들 좋아하겠습니까? 그곳에 싹을 틔어 몸을 내밀어보니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대는 척박한 땅, 곧 녹록하지 않은 삶의 터전이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들은 다른 나무들을 부러워하면서 주어진 생을 비관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온 몸으로 모진 바람을 감내하며 살았던 나날들. 이들의 수많은 일상의 날들이 오늘날 저의 두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아름다움을 잉태한 것입니다.   


     아름다워지기 위해서 반드시 철저한 조화와 균형, 티없는 깨끗함과 화려함만을 갖출 필요는 없습니다, 아름다움이란 원래 보고 느끼는 이의 눈과 마음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보는 이가 아름답다고 느끼면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든, 비뚤어지고 기울어져 있든, 매끈하든, 울퉁불퉁하든 그건 아름다운 것입니다. 



     몇 년 전 일입니다. 저의 둘째 딸이 어느 날부터 오른쪽 팔이 심하게 아프기 시작하여 진단에 진단을 거듭한 끝에 경추 6번 근처에 약 1센티미터 크기의 종양이 있음을 알게되었습니다. 당장 조직 검사를 하려 했으나 그 종양이 너무 민감하고 어려운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던 터라 수술에 위험이 따르고 또 양성일 가능성도 있으니 일단 좀 지켜보자는 병원측의 권고를 따라 약 2개월을 기다린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딸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통으로 울부짖으며 보낸 그 시간은 본인은 물론 가족 모두에게 2년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무척 힘들고 어려운 기간이었습니다. 


     통증 관리를 위해 신경차단 시술에 관한 얘기가 나올 무렵, 마침내 목 근처에 "ㄴ"자 모양의 40 센티미터 가량의 흉터를 수반하는 수술을 하기로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힘겹게 얻어낸 조직 검사의 결과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병명인 유잉육종이라는 암으로 판명이 났고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아내는 병원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민감한 종양의 위치 때문에 칼을 대는 수술은 하지 못하였고 항암제와 방사선 치료를 1년여간 하였습니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치료를 마치고 지금 4 년째 재발 없이 지내고 있는 중입니다. 


     그 종양이 팔로 내려가는 신경을 누르는 바람에 딸은 오른팔에 마치 불이 붙은 것과 같은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면서 울부짖었던 것입니다. 매 30분 간격으로 통증의 정도를 딸에게 물어보아 기록하고, 하루에 몇 번씩 전화로 담당 의사와 통화를 하면서 진통제 양을 조절해 갔습니다. 하지만 강한 진통제인 몰핀 조차도 잘 듣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고통이 딸을 힘들게 하였습니다. 그 아이 곁에서 별다른 도움을 주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했던 날들을 기억할 때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딸의 신음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들리는 듯합니다.    


     수술 후 딸은 예상보다 큰 수술 자국에 엄청난 실망을 하였고 바깥에 외출 할 때는 흉터를 가려주는 옷을 입곤 했습니다. 가끔씩 집에서 울먹이며 애들이 자꾸 자기 목을 쳐다 본다고 얘기 할 때는 안타깝고 불쌍한 마음에 저도 가슴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외모에 온갖 신경을 쓰는 십대 여자아이로서는 견디기 쉽지않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본인도 가족도 그 상처를 보는 일에 익숙해 지기 시작하였고 다른 이들의 눈길도 점점 의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평상시 저는 그 상처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였고, 가끔씩 그 상처가 저의 눈에 들어올 때면 그것이 흉하기 보다는 오히려 꽃무늬처럼 아름답게 다가왔습니다. 


     저에게 그 상처는 사랑하는 딸의 인내와 용기의 징표입니다. 깊은 어두움 속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눈물로 기도했던 순간들이 오롯이 새겨진 흔적이기도 합니다. 딸에게 수시로 건네주었던 격려와 희망, 하나님 사랑에 관한 말들이 담긴 전시물입니다. 고난의 정점에서 희미하기만 한 하나님의 손길을 찾고자 애썼던 영적 분투의 현장이 새겨진 기록물입니다. 그래서 비록 남들의 눈에는 흉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저의 가슴과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흔적들 중의 하나로 남아있는 것입니다.         


     상처라는 말에 예수님이 떠오릅니다. 이 땅에서의 마지막 삶이 온 몸의 끔찍한 상처로 장식된 분이지요. 등에는 채찍으로, 손과 발에는 못으로, 옆구리에는 창으로, 그리고 이마에는 가시로 인한 상처들이 온 몸을 덮었습니다. 하지만 이 끔찍해 보일만한 상처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흔적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상처들이 지극한 사랑과 자비의 이야기가 담겨진 흔적들이기 때문이지요. 일생을 통해 예수님의 삶을 단순하고도 철저히 본받고자 했던 아씨시의 프란시스코 성인은 훗날 자신의 몸에도 예수님과 유사한 상처(성흔, Stigmata)가 드러나는 기적적인 현상이 있었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로 예수님의 상처는 예수님을 닮는다는 표징임과 동시에 흠모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포인트레이즈에 있는 등 굽어지고 비틀어진 나무들이, 저의 딸의 몸에 있는 상처가 모든 사람들의 눈에 아름답게 보여질 리 만무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상처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세상 모든 이들로부터 아름답다라고 인정 받는 일은 사실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상처들을 지극한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 그것을 흠모하는 눈과 마음을 가진 이들은 분명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 오래된 오늘 임택동


* 이 글은 「소망말씀나눔」2017년 7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출처: http://spirituality.co.kr/540?category=578090 [산책길 기독교영성고전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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