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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기


서울 잿빛 하늘이
친숙해진 모양이다

하늘은 푸른 빛을 띄어야 한다는
마땅함이 가슴에서 사라져 버렸다

마음의 눈이 잿빛 하늘보다
더 오염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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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학교



따다다닥

후라이팬 기름이

손등 위로 갑자기 튀어올라

으-악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바늘 찌르는 듯 따끔했다


두부를 처음 구워 보았다

두께를 맞추어 칼로 네모나게 잘라

접시에 가지런히 놓은 다음

잔뜩 가열해 놓은 기름 입힌

후라이팬에 한꺼번에 쏟아 놓으니

뜨거운 기름이 엄청난 높이와 넓이로

튀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려

불을 엄청 줄였다

그제서야 잠잠해 졌다


50대 중반에 새로 배웠다

두부를 기름에 구울 때는 

약불에 여유를 가지고 구워야 한다는 걸


산다는 것

가르침 끝없는 

학교에 다니는 것이다


2018년, 새 학년 곧 시작이다

가방 정리하고 새 필기구 사고

옷을 다림질 해야겠다


두부가 노릇노릇하게 익었다

아파트 주방 창문으로 보이는 해도

노오랗게 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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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날마다 손짓하며

가까와 오는 것

꼭 있는 것

반드시 만나는 것

죽음


살아 숨쉬고 있어 

정성껏 보듬고 안아주면

친구로 다가와

꽃길로 데려간다

살맛 나는 길이다


외면하고

구박하고

발길로 걷어차면

죽지 않고 살아


원수로 다가와

손잡고 

어둠의 길로 

데려간다

사는 것이 죽을맛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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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호수



호수의 다른 이름은

기다림이다


흔들리지 않는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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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여행




햇빛

달빛 

별빛

이네들의 안부는 

지금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하지만

아직 어느 언덕 기슭에 

배회하고 있을 이름 없는 

바닷가를 마냥 서성이고 있을 

바람의 안부가 너무 궁금해

내일 주혜와 속초로 떠난다


내일은 

내 안의 일렁이는 바람과 

흔들리는 밖의 바람이 만나는 날

그 바람에

손을 내밀어 만져보고 

볼을 비벼보는 날

서로 안고 위로를 주고받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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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게끔



안동 겨울바람이 거침 없다

서울 바람과 다르다

시베리아 순록들이 내뿜어 놓은

입김을 날것으로 

코끝에 가져다 놓는다


낙동강 위로 불어대는 삭풍

강둑을 차갑게 범람하여

강 저편 앙상하게 버티고 있는

나뭇가지를 흔들어 놓는다

흔들리며 시베리아 독수리 

울음소리를 날것으로 토한다 


바람 한 점 일지않는

벽에 둘러 쌓인

마른 벌판이 사방에 있다

막혀있다 

눈물 한 방울 흔적 없다


요동 않는 그대 속에 

바람이 불어야한다

차갑게 메마르게 버티고 있는

그대에게 바람이 일어야 한다

쌓은 담이 무너져

세상 날것들이 마음대로 드나들도록

살 속 깊이 닿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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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날



겨우내내

딴 몸인 줄 알았던

얼음과 물


따사로운 봄 날

한몸되어

얼싸안고 흐르네


하루하루

봄 날만 같아라


손 잡고 어깨동무하고 

함박 웃음으로 

같이 걸어가는 날


생명의 움이 돋는 날

오늘도 기다리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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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



흐르고 흘러 

2017년 12월 1일


30여 일 지나면 

당혹스런 절벽 만나

뚝 떨어진 다음 또 

흐를테지


입가에 거품 문채

콸콸 

비명소리 아닌 것처럼 

흐를테지


눈물을 훔치고

딱 한 번만 더

외치는 순간

절벽 없는 바다에 이를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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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블로그를 만들어 잡글들을 모아 놓으려 한다. 게으른 나를 이렇게 움직이게 만들었던 여러 생각들 중 하나를 글로 남긴다."



사막의 꽃 1




모든 생명체들이 말라 비틀어져 가는 사막을 걸어왔다 할지라도 

 길에 생명의 씨앗 같은 말과 생각을 심어 꽃을 피워올릴 수만 있다면 

삶의 정원이 향기로 가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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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사과 선물"


미국서 가지고 온 검은색 가죽점퍼가 앞으로 닥칠 추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라는 생각을 이틀째 하고있다. 오늘 지하철은 아디다스 신발에 이불처럼 두터운 검정 롱코트를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하필 내 점퍼 색깔도 검은색. 기분 별로다.^^


유행따라 획일적 따라옷입기. 싫다. 나만의 나다운 옷을 입고 싶다. 90년대초 종합상사에서 은행으로 전직해서 은행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직원들이 흰 와이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부대낀 적이 있다. 사람들이 기계나 소모품처럼 보였다. 얼마 지나지않아 나는 짙은 파란색 또는 굵은 줄이 들어간 와이셔츠를 입기 시작했다. 조금의 눈총과 보이지 않는 부러움 당연히 있었다. 개의치 않았다. 지금은 지저분하고 폼도 안나는 줄 알면서 얼굴에 수염을 달고있다.


이틀 전 백화점 세일코너에서 건진 '종가집 추어탕'을 먹어보겠다는 기대감을 갖고 아파트를 들어서는 순간 택배가 왔다는 쪽지가 눈에 띄었다. 청송사과 한 박스. 평일에는 교사 주말에는 농부인 친구의 한 해동안 땀흘려 거둔 열매였다. 동기회 총무를 통해 내 주소를 챙긴 모양이다. 사과 농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대충 안다. 선친께서 퇴직 후 몇 년간 시골에서 사과 농사를 지으셨던 것을 곁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당시에 제대로 된 사과를 먹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새들이 부리로 쪼아버렸거나 벌레 먹은 것들 아니면 나무에서 떨어진 것들만 먹었다. 쏟은 땀과 정성을 알았기 때문이다.


박스를 열어보니 최상품이었다.


고등학교 때 그는 절친은 아니었다. 나보다 덩치가 월등히(ㅎㅎ) 작았지만 함부로 하지는 못했다. 한 성질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별난 이름을 가진 나는 그 친구 명찰을 보면서 큰 위로를 받았다. 오랜 세월 놀림감이 되었을 것을 짐작하면서 강한 동지의식을 느꼈다.


"박 무식"


비교적 최근에 알았다. 국보법 때문에 도무지 말도 안되는 일로 기소되어 오랫동안 시달려 왔다는 것을. 최순실-박근혜 시절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기가 찼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아마 한 번도 제대로 그를 만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끔 페이스북에 포스팅하는 그의 짧고 평범한 글 행간을 통해 그를 만났다. 좀 커 보였다. 지금 나는 그저 그 일의 전후 과정이 쪼매한 박선생을 더 키웠을지 모르겠다고 짐작을 해 볼 뿐이다. 안동 가면 꼭 만나 볼 생각이다.


이 시대의 종교 "좀 더 많이 쌓자"라는 흐름에 거슬러 올라가는 그의 발자국이 사과박스 상단에 선명히 찍혀있는 것을 목도했다. 특상품 사과를 거저 주어서 고맙고 감동되어 이런 말 하는 것 아니다. 오늘 받은 사과 박스는 내가 그동안 컴퓨터 화면을 통해 읽어온 "무식텍스트"가 팩트임을 확인시켜주는 종이 프린트물인 셈이었다.


덩치는 나보다 쪼매한 놈이 더 크게 놀고 있다. 기쁘다. 사과 박스를 통해서 읽는다. 관념에 그치지 않고 그 생각과 사상을 직접 살아내고 있는 친구를. 검정 코트처럼 판치는 세상 흐름에 저항하며 자기 옷을 걸친채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을. 거인의 삶이다.


무식하게 살아서는 안되지만 무식처럼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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